오늘은 Ivo Van Hove가 연출한 <다리에서 본 풍경>을 보고 왔습니다.






미국도 경기가 안 좋긴 하고, 예술을 우선 순위로 두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때는 브로드웨이가 런던에서 검증된 작품들만 쏙쏙 골라와서 무대에 올릴 때입니다. 요새가 딱 그래요. 작년에 Tony 상 받은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한밤 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도 그렇고, 아직까지도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나게 수익을 올리고 있는 Matilda도 그렇고 다 런던에서 제작한 작품을 뉴욕 프로듀서들이 뉴욕으로 가져온 겁니다.
그렇다 보니 뉴욕에 있는 예술가들은 불평 불만이 많기도 하죠.
좋은 점이라면... 정말 좋은 작품들을 런던까지 안 가도 볼 수 있다는 점? ㅋㅋㅋ 그렇지만 그나마도 브로드웨이 공연은 워낙 티켓 값이 비싼지라 보기가 힘듭니다. (이 점에 대해 월요일에 교수님과 열띈 토론을 벌였죠. NBA 농구 경기나 NY Yankees 경기는 엄청 비싼데도 보러 가고, 비욘세 공연도 엄청 비싼데 보러 가는데 왜 연극은 안 되냐고... 교수님 저는 그런 경기나 공연도 안.... 쿨럭)
이번에는 런던에서 2014년, 2015년에 거의 모든 평론가들이 별 5개를 준 Ivo Van Hove라는 벨기에 출신 연출가가 연출한 Arthur Miller의 작품 <A View from the Bridge>를 봤습니다. Ivo Van Hove는 요새 뉴욕과 런던에서 평론가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연출가예요. 연극 공부하는 학생들도 다들 우상으로 여기고요.
런던에서의 공연이 매진된지라 아직 공연이 정식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티켓이 동이 났습니다... 저도 학생 티켓을 노리던 참이었는데, 학생 티켓은 못 구하고 다른 경로로 운 좋게 오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밀러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아요. 작품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절! 대! 아니고, 제게는 너무나 불편해요. 특히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이 개인사로 인해 더더욱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 공연은 정말 볼 가치가 있습니다. 뉴욕에 계신 분이고, 공연 예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보시길 추천해드려요.
무대 디자인은 매우 간결하게 되어있는데, 마치 싸움닭이나 글라디에이터들을 풀어 놓을 것 같은 정사각형의 투명한 플라스틱(혹은 유리)로 된 틀이 있고 주로 그 안에서 배우들이 움직입니다.
이 연극은 (국어 교과서에서 옛날 옛적 배운 대로)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내레이터인 알피에리 변호사가 자기가 만났던 클라이언트 중 한 명인 에디 카본이라는 항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시칠리 출신의 이민자인데 부인인 비아트리스와 부모를 여의 조카 캐서린, 그리고 비아트리스의 이탈리아 국적인 친척 두 명을 불법 이주 노동자로 데리고 살고 있습니다. 캐서린과 에디의 관계가 이들의 비극의 핵심입니다.
캐서린, 에디, 그리고 비아트리스.
캐서린은 입은 윗도리처럼 꽃 피우는 청춘인데, 새처럼 훨훨 날아 둥지를 떠나야 하는데 왜 에디는 그녀에게 눈을 떼질 못 하는 걸까요?
그리고 캐서린 아가... 그 손 치워야 할 것 같지 않니...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캐서린을 딸마냥 애지중지하는 에디인데, 캐서린이 점점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에디는 캐서린을 아이처럼 대합니다. 캐서린도 마치 아이처럼 에디를 거침 없이 대하고요. 에디가 일 하고 돌아오면 신나서 달려가서 에디에게 안기고, 다리로 그의 몸통을 감쌉니다. 에디는 캐서린의 허벅지를 아무 생각 없이 쓰다듬기도 하고요. 애정 어린 관계인데, 보면서 움찔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지나치게 가까워 보입니다.
금발과 근육질 몸매로 무장하고(?) 로돌포 역할로 브로드웨이를 찾은 Ruselle Tovey
Being Human 이라는 영국 드라마 시리즈에서 늑대 인간으로 처음 알게된 배우인데, 미국까지 날아와서 열연을 보여줬습니다.
원작 텍스트에 나온 묘사와 달리 우락 부락한 근육질로 나온 점이 좀 낯설긴 했어요. (원작에선 금발이고 노래 부르길 좋아해 게이로 의심을 받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캐서린이 에디가 데리고 있는 불법 이주 노동자 중 로돌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겠다고 하자, 에디는 길길이 날뜁니다. 어떻게든 캐서린의 결혼을 막아보려는거죠. 이게 단순히 로돌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캐서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착 때문인게 더 문젭니다.
에디는 캐서린에게 로돌포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유일한 이유는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며 캐서린의 마음에 의심을 불 지피려고 합니다.
플롯 요약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배우 뺨치게 생기신 Ivo 연출님
Ivo Van Hove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건, 이 빈 전투장과도 같은 무대를 관객들이 숨도 못 쉬고 집중할 정도로 긴장감으로 가득 채운다는 겁니다. 캐릭터들 사이의 역학 관계가 너무나 팽팽해서 언제 폭발할 지 숨 죽이고 기다리게 됩니다. 더불어 주인공인 에디의 심리 상태에 기가 막히게 Gabriel Fauré의 레퀴엠 중 일부분을 골라 따와서 연극 내내 흐르게 하는데 이 역시 폭발 화학 반응식에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맨 마지막 장면에 비처럼 내리는 가짜 피는 조금 상투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관객들은 좋아하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구요.
주인공 에디를 맡은 Mark Strong의 동물적인 눈빛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확인해보니 그는 작년에 Laurence Olivier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네요. Ivo Van Hove는 연출상을 수상했고요, Best Revival of Play 상도 받았습니다.
고전만 주구장창 공연하다고 툴툴 댈 때도 있지만, 역시 이런 밀러의 작품을 접하기가 그리 쉽지만도 않습니다. 그렇게 보기 드문 작품을 엄청난 연출 대가와, 대단한 앙상블 배우들로 구성된 공연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더불어 밀러가 한참 씨름하던 컨셉인 '현대적인 (그리스식) 비극'을 이만한 퀄리티로 무대 위에서 볼 있다니, 이미 타계한 밀러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봤으면 참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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