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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알 파치노 캐스팅 China Doll 리뷰 뉴욕 연극

이러면 안 될 것 같지만... 프로듀서들이 SNS에 아무 것도 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기에 써봅니다, 하하. 


오늘 내일 사실 드레스 리허설에 초대 받아 표 구하기 힘든 공연들을 많이 보게 되는 풍년을 겪고 있습니다.
매우 행복해요. 

아 이래서 내가 그 비싼 학비랑 생활비 들여서 뉴욕으로 유학 왔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리뷰는... 어쩌면 세계 최초로 온라인에 올라가는 리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사실 공연이 아직 오픈한 게 아니고 일부 사람들만 초청해서 드레스 리허설을 한 것이기에 오늘 감독님도 "You are the first people to see this play"라고 하더군요. 정말 따끈 따끈한 소식 보고 계시는 거예요! :)


사진에서도, 오늘 봰 실물로도 베레모를 쓰고 나타나신 David Mamet옹


여튼 오늘 초대 받았던 드레스 리허설은 알 파치노가 등장하는 China Doll이라는 제목의 연극입니다. 극작은 David Mamet이 했는데, 학부 시절에 그가 쓴 Oleanna 보고 이 아저씨 여성 혐오자인가 싶은 생각이 좀 들었던... 그래서 사실 보기가 꺼려졌던 작품이지만 제가 워낙 알 파치노를 좋아하는 지라, 초대 제의가 들어와서 쪼르르 갔다왔지요. 


Devil's Advocate 때만 해도 팽팽하셨는데... 75살이 되니 자연스러운 원숙미(?!)를 뿜어내시는 Al Pacino옹.


David Mamet은 참으로 인간들 간의 권력 관계, 특히 권력이나 돈에 눈 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Oleanna는 남자 교수와 그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 하는 여학생의 관계가 어떻게 여학생이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자 뒤바뀌는지를 다루고 있고 Glen Garry Glengarry Glen Ross는 부동산 세일즈맨들이 성과를 가지고 경쟁하며 암투를 벌이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쓴 작품은 억만장자인 Mickey Ross가 하루 종일 자기 집 거실에서 전화 통화 하는 내용입니다.

정말 그거예요 ㅋㅋㅋ

배우가 딱 2명이 나오는데 Mickey Ross와 그의 비서 Carson. 이렇게 밖에 안 나오고 비서는 전화를 받아서 전달해주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물론 결말을 위해서도 그가 꼭 필요했지만요.) 

Mickey Ross는 외국인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녀에게 결혼 선물로 비행기를 선물합니다. 모형 비행기 말고 진짜 비행기... (ㅅㅅ그룹 ㅇㅈㅇ 부사장님--이젠 부사장님이 아닌가요?--도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문제는 이 비행기를 스위스 회사에서 샀는데 스위스 번호판을 안 붙이고 미국 번호판을 붙이고, 미국에 착륙했다가 Mickey의 여자친구를 태우고 캐나다로 가는 바람에 Mickey는 예상치 못 했던 5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물어야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세금을 내기 싫어 Mickey는 어떻게든 세금을 내지 않던가, 아니면 비행기를 환불할 생각을 합니다. 항공 회사에는 전화를 걸어 세금 내야되는 줄 몰랐다, 망할 미국 번호판은 왜 붙였냐며 컴플레인을 하고, 항공 회사에서는 Mickey에게 주문 제작했던 비행기 디자인과 똑같은 디자인 및 재질로 만든 모형 비행기를 보냈다며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이 모형 비행기를 보고도 Mickey의 마음은 변하질 않습니다. 탈세를 하던가, 아니면 환불하던가.

탈세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냥 민간 항공기 타고 다녀'라고 하지만 여자친구는 워낙 고급 취향이셔서... 차마 본인은 민간 항공기는 탈 수가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주문 제작한 비행기를 왜 포기해야 하냐며 징징댑니다. (Mamet 아즈씨... 왜 이리 여자들을 싫어하시나요... 도대체 어떤 여자들을 만나왔길래....)

결국 Mickey는 세금을 탈세하려고 주지사와 변호사 등 본인 주변 인물들을 동원해서 탈세를 시도합니다. 

이 와중에 캐나다로 가 있는 여자친구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공항에서 몸 수색을 당했다며 Mickey에게 전화 통화로 징징대고, Mickey는 애지중지하고 물고 빠는 여자친구를 감히 그런 대접을 했냐며 길길히 날뛰고 또 주지사와 변호사에게 전화를 겁니다. 

전화로 계속 자기 권력을 행사하며 처음엔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가....
잘 풀리면 연극으로 만들 수가 없죠!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주지사와 전화했던 내용 때문에 탈세 및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될 것 같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그는 있는 돈 다 꽁쳐서 해외로 도주할 생각을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보.........) 일은 꼬일 대로 꼬여서, Mickey의 여권은 해외 출국이 금지된 상태고, 여자친구는 캐나다에서 패닉 상태죠.

그러다가 비서는 문득 자기가 범죄 행위로 누명을 쓸까봐 Mickey를 고발할 생각을 합니다. Mickey가 '너 누명 안 써, 괜찮아. 걱정마. 내가 공수표 줄 테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살짝 자세를 굽히는데도 비서가 말을 온순히 듣질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도 Mickey의 여자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며, 여자친구도 고발할 거라는 협박을 하죠. (이 순간 "아... 극작가 아저씨 Oleanna 재탕하신 겁니까....?" 이런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데.

[스포일러 주의]

경찰이 들이 닥쳐 문을 마구 두드립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나봅니다. Mickey는 자기와 자기 여자친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모형 비행기로 자신의 비서를 살해합니다. 살해하면서 "도와주세요, 이 늙은이를 죽이려고 해요! 도와주세요!"라고 비명지르며 마치 자신이 정당 방위로 살해한 것처럼 위장합니다. 심지어 자기 얼굴에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내며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와 정말... 2시간 내내 알 파치노가 전화 통화하는 거만 보면서 '응 그래,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전화 통화 리얼하게 하는데 뭐?' 이런 생각이 사실 조금 들었는데... 결말이 ㅋㅋㅋㅋㅋㅋㅋ 결말이!!!!!!!

연극이 끝나고 너무 충격에 빠져있다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고 친구랑 이 연극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 것 같냐고 물으니 친구는 "Don't fuck with wrong people (엿먹일 사람도 골라서 엿먹여라)"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일단 이 연극의 묘미는 대부분의 Mamet의 희곡들이 그러하다시피 "Mamet speak(마멧의 언어)"라는 애칭까지 생긴 매우 현실적이고 street smart한 언어 스타일입니다. 2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 내내 알 파치노가 온갖 전화기를 바꿔가며 통화하는데 그 언어가 너무나 현실감이 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살다 살다 러닝 타임의 98%가 전화 통화인 연극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스토리 텔링을 끌어나간다니 대단한 극작이긴 합니다. 

그리고 75세인 알 파치노가 2시간 내내 단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거의 원맨쇼 수준으로 대사를 와르르 쏟아내는 것을 보고 그의 경이로운 스테미나와 암기력에 박수 갈채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이런 연극을 75불-300불 (티켓 값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겠네요. 브로드웨이 연극 티켓 정가 범위를 그냥 씁니다)을 주고 봐야 하느냐... 흠,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인생을 뒤바꿀 만한 경험을 주는 연극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초대 받지 않았다면 아마 연극계의 미슐랭 가이드격인 New York Times의 (아마도) Ben Brantley의 리뷰를 기다렸다가, 호평이라면 student rush (학생 당일 티켓)을 노려봤을 것 같아요. 

물론 뉴욕에 관광으로 오셨고, 알 파치노의 팬이라면 강력히 추천해드립니다. 2시간 내내 알 파치노가 전화 통화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하. 이 연극은 정말 알 파치노가 캐스팅 되지 않았다면 브로드웨이에 올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Mamet 아저씨가 여성혐오자인 것 같다는 저의 추측은 점점 더 짙어지지만, 동시에 그는 Al Pacino나 Alec Baldwin (Glengarry Glen Ross 영화 버전에 출연했어요)와 같은 중후하면서도 얍삽한 느낌의 배우들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역들을 쓰는 작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첨언: 마케팅을 정말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트레일러를 보면 마치 비행기의, 비행기를 위한, 비행기에 의한 연극 같아요... 저는 알 파치노옹이 비행기 타고 중국으로 떠나는 내용의 연극인가 했습니다. 홍보팀 나오세요, 맴매 좀 맞읍시다!